Diary/2022
-
사회인 1인분Diary/2022 2022. 12. 18. 17:12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엄마에게 학교에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이 아이랑 같이 놀기 싫었다고 하면 항상 "그 애도 그러면 너 싫어해"라는 답만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하시지 않고 항상 그런 답만 들으니, 나도 그냥 내 느낌과 감정을 자꾸 묻어두었다. 한 번도 나의 감정이 인정받은 기억이 없다. 아빠는 다행히 내 감정을 잘 인정해주셨다. 그렇지만 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식의 부정이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서 내 생각에 영향을 더 크게 미친 것 같다. 자꾸만 뭔가에 대해 싫은 감정을 눌러두었다가 나중에 이상하게 폭발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냥 싫어도 괜찮다고 하고 넘어간 것이 지금껏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싫은 것을 표현하고 줄여나가고 있다. 특히 친구라..
-
올해 바뀐 점Diary/2022 2022. 12. 12. 22:23
갓 입사했을 때는 회사 동료의 생일 챙기는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점점 귀찮다. 생일을 한번 챙기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들을 다 신경 써야 해서 그런가 보다. 차라리 생일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같이 모두가 한 번에 기념할 수 있는 날에 이벤트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이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일이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 이후로 많은 것을 줄여나가고 있다. 특히 감정 소비와 쓸데없이 사람 챙기기. 그 시간에 나 자신, 그리고 가족과 친구를 더 챙기는 편이 남는 것이 많다. 회사 업무와 인생에 있어서 모든 일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정말 꼭 개입할 일, 대답할 일만 골라서 한다. 왜 유명인들이 악플보다 무플을 더 무서워할까? 자기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
영어가 익숙해지니 바뀐 점Diary/2022 2022. 11. 13. 21:17
영어가 한국어보다 말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같은 시간 내에 발화량이 많아 예전에 영어가 잘 안 들렸을 때는 그들의 청산유수가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이 회사에 와서 영어에 익숙해지고, 많은 사람들을 겪다 보니 결국엔 한국어나 영어나 모두 수단에 불과하며, 결국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말을 함으로써 이루고 싶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함을 깨닫게 됐다. 이런저런 실제 사례를 겪다 보니 영어 공부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졌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어권 화자를 만나니,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영어에 목매서 공부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허무함을 느꼈다. 거기에 목을 매면 맬수록 우리는 가진 게 영어밖에 없는 사람한테도 괜히 미안해지고 을을 자청하게 된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그냥 필요..
-
여섯 번째 데모를 마치며Diary/2022 2022. 11. 12. 20:24
이번 주에는 꼭 필요한 스탠드업 제외하고 미팅을 전부 불참한 뒤 캘린더를 포커스 타임으로 꽉꽉 채워 중요한 데모 준비에 열을 올렸다. 미국 오피스의 동료가 이번 데모가 team morale(팀의 사기)에 매우 중요할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해줘서 더 열심히 준비했다. 발표는 진행이 색달랐는데, 리드 개발자 혼자서 발표를 하는 대신, 디자인 - 프론트 - BFF - 백엔드 순서로 서로 여태까지 작업한 것을 프로젝트 이해관계자에게 소개했다. 그래서 각 파트 담당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상당히 민주적인 방식이었다. 이번 데모는 지금까지 애지중지 가꿔 온 UI 라이브러리가 얼마나 개발의 효율을 담보해주는지 시험하는 장 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발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너무나 긴장돼 무슨 말로 오디오를 채울..
-
오랜만에 경험하는 불안감Diary/2022 2022. 10. 22. 19:55
오키나와 여행 다녀와서 몸이 만신창이가 됐는데, 그 와중에 많은 미팅을 소화하고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 사람들에게도 적응을 하려니 지난주에는 집에 돌 와서 맨날 잠만 잤다. 처음으로 조용한 동네가 너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부동산 업자가 처음에 집 돌아볼 때 조용한 곳에 사는 게 무조건 좋다고 했구나. 역에 가까운 집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이 많은 조용한 곳에 정착하길 잘했다.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에서는 불안감을 오랜만에 느꼈다. 새로 합류한 사람이 자기 역할에 대해 자꾸 말이 바뀌는 거 같기도 하고, 합류 이유도 모호할뿐더러, 나와 역할이 겹치기도 하고, 미국 오피스 사람이기 때문에 옆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생긴 불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팀 리드한테 저 사람과..
-
어려웠던 인터뷰Diary/2022 2022. 8. 25. 08:02
요즘 한 팀의 사내 전배 엔지니어 면접에 패널로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어제 면접자가 작년에 같이 협업하다가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의 고자세 피드백 때문에 내가 몸담은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처해서 버그 수정하고 서둘러 배포하느라 살짝 힘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 팀 리드는 자기 주도권을 뺏기고 프로젝트에 대해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는 이유로 회의 시간에 자꾸 그에게 딴지를 걸고 협조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와서 곤란했다. 프로젝트가 막 시작한 단계에는 수정하기에도 바쁜데, 인정 투쟁에 바빴던 그녀는 지금 회사를 나가고 없다. 그의 면접을 진행하고 피드백을 남기다 보니 자꾸 그때의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었다. '이런 것은 쓸 수 없다'라는 사람에게 미팅을 ..
-
경청은 적절히Diary/2022 2022. 8. 20. 15:11
흔히 개발자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기에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뿐이고, 사실 프로 의식을 가지고 발전을 추구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어딜 가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에는 회사에 대한 개선 사항과 건의 사항, 불만을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뭔가 있어 보여 모든 말을 경청했는데, 이제는 의도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에너지를 반만 쏟는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입장일 뿐이지 내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모든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지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면 되는데, 초년생 때는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이 안돼서 모든지 너무 진지하게 들었다. 그동안 너무나도 "억울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
-
水曜どうでしょうDiary/2022 2022. 8. 3. 09:41
https://www.netflix.com/title/80105433 요즘 넷플릭스에서 일본어 공부 겸 재밌어서 엄청 열심히 보고 있는 '수요 방랑객'! 일본어로는 水曜どうでしょう(수요일 어떠십니까?)라는 제목이다. 일본어 선생님 말로는 水曜ロードショー(수요로드쇼)라는 방송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라 한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30대 이상 일본 사람들은 거의 다 이 쇼를 알고 있어서 같이 이야기할 때 주제로 쓰기 좋다. (특히나 초반에) 엄청난 초저예산으로 진행한거라, 출연자 오오이즈미의 농담에 따르면, 카메라도 요도바시 카메라 같은 곳에서 2만 엔이면 살 수 있어 보이는 것 가지고 찍었다고 한다. 삿포로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주사위판이랑 주사위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도무지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