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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려웠던 인터뷰
    Diary/2022 2022. 8. 25. 08:02

    요즘 한 팀의 사내 전배 엔지니어 면접에 패널로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어제 면접자가 작년에 같이 협업하다가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의 고자세 피드백 때문에 내가 몸담은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처해서 버그 수정하고 서둘러 배포하느라 살짝 힘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 팀 리드는 자기 주도권을 뺏기고 프로젝트에 대해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는 이유로 회의 시간에 자꾸 그에게 딴지를 걸고 협조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와서 곤란했다. 프로젝트가 막 시작한 단계에는 수정하기에도 바쁜데, 인정 투쟁에 바빴던 그녀는 지금 회사를 나가고 없다.

    그의 면접을 진행하고 피드백을 남기다 보니 자꾸 그때의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었다. '이런 것은 쓸 수 없다'라는 사람에게 미팅을 요청하고 피드백을 받아내느라 정작 내 감정을 많이 죽여서 그랬나 보다. 예전만큼 울컥하지는 않았지만, 면접 피드백에 그런 사적인 감정을 섞지 않고 적절한 정도로 협업 경험을 서술하느라 몇 번이고 고쳐 썼다. 일본에 와서 그와 이야기를 몇 번 나눠본 결과, 회사에 불만은 많고 자기는 아이디어가 넘치는데 지금 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옮기고 싶다는 뉘앙스였다. 조심스레 이직하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사내 전배 신청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면접관이 나였네... 운도 없어라.

    시니어 엔지니어를 뽑는 자리였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본받고 싶은 선배들을 전 직장과 이번 직장에서 몇 분 뵈었기 때문에 평가 기준점은 확고했다. 이분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듣는 상대방 쪽에서 기분 상하지 않게 피드백을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럽게 해 준다는 점이다. 미국 엔지니어분이 우리 팀 라이브러리 피드백을 해준 적이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받아 본 피드백 중에 가장 고품질이었다. 서면으로도 모자라 자기가 직접 저장소 포크를 떠서 실험한 것도 보여줬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제 그분은 그런 점이 부족했고 기술적으로 자기가 백엔드 개발 개념을 어떻게 프런트엔드에 녹였는지, 앵귤러와 리액트 개념을 어떻게 섞었는지 설명하기 바빴는데, 가장 중요한 도입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니까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버 엔지니어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질문은 캐싱 전략이었는데 자꾸 모듈성을 강조한 자기의 설계를 뽐냈다. 기술적으로 열정이 넘치는 것은 좋지만 그 열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같은 포지션 사람들에게 잘 전달이 안되면 방향을 점검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시각적 회귀 테스트는 어떻게 진행하냐고 물어봤더니, 그것보다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부분에서 좀 의아했다. 시니어 프론트엔드 포지션인데 왜 그 부분을 등한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같이 협업했을 당시에도 디자이너와 별다른 소통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시각적인 부분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너무 부정적이었나 싶은 걱정에 같이 면접을 들어간 개발자에게 평을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자기는 듣는 내내 o.o 였다고 말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서 안도감이 들었다.

    사회생활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자기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예의를 차리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포기하면 서로 적대적인 분위기밖에 조성하지 못한다. 나한테 호의적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쉽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받아주기 때문이다. 시니어 엔지니어는 자기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예의를 차리고, 특히 위나 옆에 사람들에게 너무 반항적, 혹은 경쟁적으로 대하지 않고 '먼저' 정중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반항적인 사람들은 후배들 입장에서는 멋있어 보이는데, 위나 옆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관계의 다리를 스스로 불태워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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