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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스러운 학습을 위한 몸부림
    Diary/2021 2021. 6. 30. 22:18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는 ‘직관을 실험하기 알맞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컴퓨터에서 일련의 작업을 실행하려고 할 때 내 머릿속에 그냥 떠올라서 한 작업들이 실제로도 올바른 방법이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상당한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늘 컴퓨터로 뭔가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냥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무작정 그렇게 했는데 실제로도 그러한’ 실험들을 무제한 반복하기 좋은 장소. 그렇지만 컴퓨터를 활용하는 직업을 가지려면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남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이 부분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서 면접 때 많은 고생을 했다. 늘 결과만 잘 나오면 된다 생각했기 때문에 과정을 찬찬히 돌아보지 않았다. 때문에 요즘에는 다시 과정들을 돌아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흐름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학습’의 과정인 것일까?

    사실 요즘 돌아보는 개념들은 예전에 책을 보면서 어렴풋이 다 듣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대학교 때까지 머릿속에 수많은 무의미한 개념을 쑤셔 박는 데에 지쳐서 이런 식으로 더 이상 공부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이것도 이렇게 공부한 내 책임도 있었지만, 시간은 없고 양은 너무 많으니 여유가 없어서 하나하나 개념을 소화하지 못하고 일단 머리에 글자 그대로 쑤셔 박은 다음에 이해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그냥 책의 생각을 내 생각인 마냥 거짓말을 했다. 이런 공부법은 한국에서는 통했지만 스웨덴 교환학생을 가서 에세이를 비롯한 이런저런 시험을 보면서 정말 깨졌다. 거기서 요구하는 것은 텍스트를 소화한 다음에 적절한 인용을 거쳐 내 생각과 섞어 짜임새 있게 재해석을 하는 것인데 나는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스웨덴 영화와 스칸디나비아 복지제도에 대한 에세이 시험을 최저 성적으로 통과하고 공부하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게 되었다. 귀국해서 미친 듯이 남들이 쓴 글, 특히 학자들의 글을 읽고 어떤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지, 어디까지가 그들의 진짜 생각이고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먼저 태어난 자에 불과한 ‘선생’들 중에 타인이 고생해서 만들어낸 지식 습득을 후생 한 자들보다 먼저 했다는 이유로 계급적 우위에 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분야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비슷하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너네가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된다는 겁을 잔뜩 준 다음에 자기 말을 잘 듣도록 만든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이런 경험 때문에 또다시 실제로 내가 경험하지도 않는 개념들을 내 것인것 마냥 포장하는 일은 차라리 똥을 먹는 게 나을 정도로 의미가 없는 짓이라 생각해서 면접에서 줄줄 읊는 것이 실무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혼자 똥고집 같은 신념을 가졌다. 사실 가장 좋은 개발 공부법은 이런저런 것을 많이 만들면서 거기서 얻게 되는 깨달음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인데, 졸업할 즈음에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냥 일단 무작정 취직을 해서 실무 경험을 쌓자는 방향을 선택했다. 운 좋게 개발자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면접관을 하신 분 중에 나의 그런 자세를 좋게 보시는 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오래 생각 안 하고 무작정 행동을 했기 때문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래서는 운이 다 떨어지면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거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네이버를 퇴사를 하기 전에 짧은 기간이였지만 같이 일했던 리더 분과 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이 있다. 면접을 때는 실력이 의심스러운 수준의 대답밖에 못해서 내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는데, 실무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었다고 말씀해주신 매우 솔직한 분이시다. 그분께 “면접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그냥 그렇게 느껴서 행동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니까나중에 경력이 쌓여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일이 있을 도움이 많이 된다. 그래서 알아두어야 한다라고 아주 친절하게 학습의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변명의 여지가 없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네이버에서 있는 동안 불안의 근원은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나는 모르고있다고생각했기 때문인 같다. 이제 쓸데없는 불안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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