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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연한' 기대를 버리자
    Diary/2013: Sweden Lund 2014. 3. 6. 01:52

      이제 귀국까지 25일남짓 남았으니 얼른 그동안 쌓아두었던 재활용 쓰레기들도 다 처리하고, 짐 문제도 생각해보고 은행 계좌도 닫으러 가고, 냉장고에 남아있는 음식물들도 해치워야 겠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예상했던 대로, 시간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먼 날의 일인 것 같았는데. 작년에 사운드 시간에 배웠던 도플러 효과를 몸소 경험하는 것 같다. 짧은 타국에서의 생활이였지만 열심히, 재밌게 지내왔던 만큼 정리도 깔끔하게 하고 돌아가야 겠다.


      결과적으로 이번 교환학생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은 말로 못하게 진귀한 것들 투성이다. 꼭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과의 교류, 여행, 룬드 대학에서의 수업에서 얻은 것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도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여기 이 기숙사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생각한 건 정말 잘 한 선택이였다.


      교환학생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던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기대를 버리고 왔던 것'에 있다. 이상하리만치 출국 전날에도, 인천공항에서 아빠의 배웅을 받고 비행기를 타러 갈 때도, 코펜하겐에 도착해서도 그다지 긴장되지 않았다. (영어가 입에 안 붙어서 짜증은 났었다.) 나도 어디서 이런 무덤덤함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이나 부모님이 가서 힘들지 않겠냐고 할 때도 '그냥 유럽도 사람 사는 곳인걸 뭐.'라는 대꾸를 했다. 그렇다. 유럽은 문화가 다를 뿐이지 기본적으로 먹고 싸고 잠자고 똑같이 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구 반대편의 대륙이다.


      한 가지 다짐을 출발 전에 한 게 있다면, 바로 '그냥 한국에서 처럼 살아야지. 오바하지도, 그렇다고 기죽지도 말고.' 이거였다. 사는 장소를 옮긴다고,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산다고 나의 본연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 바뀐다면 본인 여하의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앞으로 교환학생을 생각하는 친구들이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고, 먹는 것도 다르고, 장소도 바뀌니 처음에는 '아, 한국으로부터 해방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몇 달 못 가준다.


      스웨덴은 스웨덴다우니 좋고, 유럽은 유럽다우니 좋았고, 한국도 한국다우니 좋다. 한국은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아갈 길이 멀지만 미워하기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나라이다. 어딜 가나 사람 때문에 울고 사람 때문에 웃는다. 교환학생 뿐만 아니라 뭔가를 시작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근거가 그 어디에도 없는 '막연한 기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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