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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컴포넌트 깎는 노인
    Diary/2021 2021. 7. 4. 19:11

    이번 주에 드롭다운 컴포넌트 버전 0.1.0 개발을 거의 마무리했다. 아무도 나에게 드롭다운 만드는데 적어도 3주는 걸릴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일단 릴리스하고 배포할 때마다 버전을 올릴 예정이라서 버전을 낮게 잡아두었다. 모바일 지원도 하지 않고 IE 지원도 없어서 '이런 거 금방 끝나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디자이너가 만든 Figma mockup은 완성본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에 불과해서, 그걸 보고 같이 논의를 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자꾸 간과하고 있다.

    컴포넌트 접근성 검사를 엄격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드롭다운은 커스텀 디자인은 일단 피하고 브라우저 제공 기본 요소의 디자인을 overwrite 하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div, span 그리고 aria 속성(뭔가 영화 제목 같다 😂)을 사용해 밑바닥부터 요소를 만드는 방식은 피하려고 한다. 밑바닥부터 만들면 키보드 접근성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시간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브라우저가 기본으로 제공해주는 요소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다. 브라우저 벤더들이 좀 더 열 일해서 더 다양한 기본 요소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일을 덜하지(?)

    디자인 가이드를 보고 그대로 찍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분명 UI 개발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부러 시간 내서 한 마디 말이라도 나누면 디자이너와의 작업이 더 수월하게 진행되는 기분이 든다. 진짜 할 말이 없으면 "이야, 접근성을 잘 지킨 버튼 디자인이 아주 마음에 들어. 정말 어썸해!"라는 말이라도 하면 굉장히 좋아해 준다. 나는 디자인 관련 책이나 작품 보는 것도 무지 좋아해서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뭔가 마음이 벅차오른다. "아, 이 사람들의 static 한 가이드를 코드로 만들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라는 기분이 들면 작업이 참 잘 진행된다. 이번 팀 사람들은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가끔은 디자인 회의를 하자고 모였다가 주제가 산으로 가버려서 갑자기 아직 가이드도 안 만들어진 loading indicator 라던지 가이드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drop-shadow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쓸 것인지 이야기하다가 회의 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린다.

    예전에 아빠가 내가 WP으로 이직해서 하는 업무를 최대한 쉽게 설명해달라고 해서 이런 비유를 들었다.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어서 때마침 앞에 있는 티스푼을 집어 들고, "아빠 내가 맞게 되는 직무는 전체적인 애플리케이션 설계보다는 이런 티스푼 같이 작지만 카페 운영에 꼭 필요한 요소를 한 땀 한 땀 만들어 내는 일이야. 컴포넌트 깎는 노인이 될게."라고 말했다. 잘 설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알겠다고 하셨으니 나도 그냥 넘어갔다. 한 번쯤은 이렇게 UI 컴포넌트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보는 업무 경험을 쌓는 것도 앞으로의 개발자 커리어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3년 후에도 깎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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