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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남과 헤어짐
    Diary/2013: Sweden Lund 2013. 12. 28. 08:51

      요즘 하루하루 날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금방 꺼질 것 같은 촛불 심지를 바라보는 것 같은 마음이다. 한 해의 마무리를 여기 이 조용한 룬드에서 책읽고 음악 실컷 듣고 사색하면서 보내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이긴 한데 가끔은 심심하다. 다행히 친구 한 명이 아직 떠나지 않아서 매일 영화의 밤을 가지면서 날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았는데 배우들보다는 음악과 세트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원작 소설을 작년에 근로할 때 한 번 읽어봤는데 영화나 소설 둘 다 마음에 든다. 알렉스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들을 때 마다 구토하려는 것을 보고 있자니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분이 묘하다, 요즘. 

      8월 20일에 도착해서 그렇게 바쁜 오리엔테이션 기간을 보내고 한 학기가 거짓말처럼 정신없이 지나갔다. 내 옆에 있던 친구들은 다들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서 크리스마스에 맞추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잠시 쉬러 집으로 돌아갔다. 4개월 동안 같이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간 친구들이 '정말 내 옆에서 존재했던 사람들인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비현실적인 존재들로 느껴진다. 내가 꿈을 꾼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면 말 다했다. 물론 헤어져도 페이스북이나 메신저로 간간히 연락은 할 수 있겠지만 물리적으로 이제는 다들 저 머얼리 떨어지게 되니 아쉬운 기분이 항상 먼저 앞선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참으로 다들 기막힌 인연들이다. 많고 많은 교환학생 대상국중에 우리는 스웨덴을 골랐고, 거기서도 여기 룬드대학을 골랐고, 저번 학기도 다음 학기도 아닌 이번 학기를 선택해서, 수강 신청을 한 다음에, 그 과목 리스트에 또 우연히 겹치는 과목들이 있어서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되었다. 참으로 많고 많은 단계를 거쳐서 우리는 여기에 모였구나.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하리만큼 여기 올 때 걱정이 안 되었다. '가면 또 누군가 마음에 맞는 좋은 사람들이 있겠지.' 하면서 무작정 왔고, 신기하게도 그대로 되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항상 2, 3월은 나에게 두려움의 기간이였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는 처음 가보는 낯선 곳이 두려워서 울었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는 정들었던 모든 것과 헤어져서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두려워서 울었다. 유일하게 이번 교환학생 때만 울지 않았다. 20년 동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익장이라고나 할까. 호호. 어딜가나 다 사람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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