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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2) - Taize Community; 화해의 공간Diary/2013: Sweden Lund 2014. 1. 24. 07:48
떼제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떼제의 노래'가 너무나도 좋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정교한 멜로디를 반복해서 부르는 떼제의 노래는 나를 금방 사로잡았다. 독서할 때도 듣고, 그냥 있을 때도 듣고, 학교 근로할 때도 듣고, 같이 부르고. 참 짧은 곡들이지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중학교 때 신부님이 미션을 주시면서 열심히 하면 프랑스 떼제에 보내준 다는 말을 하셔서 거기에 혹해 정말 열심히 미션을 했지만 그 영광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갔었다. 그거 덕분에 참 열심히 성서 공부는 잘 했다. 상에 눈이 멀어 시작한 도전이였지만 결과를 놓고 따지고 보면 그리 손해는 아니였다.
떼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그 이후로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이 고이 내 마음 속에 간직해 두었다. 떼제 공식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날락 거리면서 거기 있는 본문들을 다 꼼꼼히 읽고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 언젠가 프랑스에 가까이 가면 꼭 가겠다는 일념으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물론 떼제 때문에 유럽권으로 교환학생을 온 것은 아니지만서도 스웨덴 교환학생이 확정되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떼제였다.
다른 동행을 구해서 같이 프랑스 여행을 떠날까 하다가 그냥 비행기표를 산 것도 이 떼제 여행 일정 때문이였다. 원래 12월의 마지막 주에 스트라르부르에서 열리는 유러피안 모임에 갈까 생각도 해봤는데 비싼 비행기표 때문에 포기하고, 1월의 중순을 택해 신청을 했다. 2월에 거기서 한 달 봉사도 해보고 싶어서 문의해 보았으나 아쉽게도 이제 부활절 전까지는 장기봉사자를 모집하지 않는다는 답장이 와서 마음을 접었다. 미리미리 10월 말에 마콩로쉐 떼제베 역까지 가는 기차표까지 다 샀다. 일찍 사니 왕복 50유로라는 엄청나게 싼 가격에 표를 샀다. 나중가서 확인해 보니 다른 사람들은 편도 가격만해도 50유로 넘게 지불했단다. 역시 이런 유럽 기차표는 미리 사두는게 최선이다.
민박집에서 아침을 거나하게 먹고 갸흐드리옹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우리나라 용산역에 온 것 같은 친근한 느낌이였다. 기차를 타러 가는데 어떤 사람 두 명이 말을 걸길래 째려 봤더니 그냥 지나서 갔다. 딱보니 길을 묻거나 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뭔가 구린 냄새가 나서 째려 봤는데 너무 무섭게 봤나 보다. 미안!
기차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아서 역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돈도 별로 없으면서 따뜻한 커피는 또 먹고 싶어서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아메리카노가 3.3유로 였는데 가지고 있는 현금은 그에 미치지 못해서 더 싼 메뉴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프랑스인 캐셔 언니한테 물어봤다. 놀랍게도 그 언니가 자기가 매니저라면서 그냥 2유로에 주겠다고 했다. 어떻게 덥석 1.3유로를 깎아주는 그런 선행을 베풀수가 있는 걸까 그것도 여행 온 일개 관광객에게... 흑흑... 아침부터 나를 감동먹게 하는 프랑스였다. 음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불쌍해 보였나보다. 허허. 아무튼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렇게 2유로에 미디움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사먹는 기적을 체험하고 아직 멍한 채로 떼제베에 올라탔다. 리옹역에서 마콩로쉐역까지는 2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상당히 가까웠다. 역에서 내리니 역사에는 매점 아주머니 포함 4~5명 밖에 없었다. 마콩로쉐역에서 떼제 공동체까지 가는 버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그동안 못 들어봤던 음악들을 랜덤으로 재생시키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40~50분 정도 가면 클뤼니 마을을 지나서 비로소 떼제 공동체가 나타난다.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상당히 편했다. 내리니까 한국인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1주일간 떼제 공동체에서 지내면서 아시안인들은 홍콩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밖에 보지 못했다. 여기서 지내는 자원봉사자 외국인 친구들은 '안녕?'이라는 한국인사를 남발하고 다녀서 처음에는 신기했다. 스톡홀름에서 온 스웨덴 친구가 특히 '안녕?'이랑 '잘 지내?'를 정말 좋아했는데 나는 거기에 스웨덴어로 답해줘서 특이한 일상 대화가 되버렸다.
3시 쯤에 새로 도착한 사람들의 리셉션을 끝내고 배정된 도미토리로 향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친구, 홍콩에서 온 친구들 2명, 미국 시카고에서 온 친구, 그리고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시다가 유럽 성지순례중이신 언니가 같은 룸메이트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되있었다.
떼제에서의 저녁식사는 나름 메인 메뉴(주로 야채와 감자, 가끔 고기류. 그런데 고기류라 해봤자 소세지, 얇은 햄 등 가벼운 것들이 대부분.), 과일, 디저트까지 책임져주는 충실한 식단이다. 채식주의자인 사람들이 더 좋아할 법 한 듯한 메뉴들이 주를 이룬다. 어렸을 때 편식이 일상이였던 내가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심 놀라웠다. 떼제 공동체의 심볼인 빨간 플라스틱 사발이 눈에 띄었다. 컵 대용으로 여기에다가 받아 먹을 수 있는 액체류는 전부 받아 마신다. 아침 식사 때는 바게트 빵 담을 그릇으로도 사용된다. 나이프도 따로 없고 only 숟가락 하나와 손으로 전부 해결한다. 숟가락 뒷부분을 나이프 대용으로 사용해서 버터와 잼을 펴 바른다. 아 참 심플하고 마음에 든다.
떼제에서의 식사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일주일 내내 아침마다 바게트를 먹어서 평생 먹을 바게트 빵은 여기서 다 먹은 것 같다. 같이 주는 치즈는 또 어찌나 맛있던지! 치즈의 종류도 조금씩 바꿔가며 주기 때문에 질릴 염려가 없다.
그렇게 떼제에서의 첫날은 저녁 식사 후 저녁 기도를 하고 마무리가 되었다. 같은 미국인 룸메이트 친구의 코골이가 심해서 처음엔 스트레스였는데 나중에는 적응이 되어서 그다지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
떼제에서의 하루 일과는 간단해 보이지만 그대로 따라서 살다 보면 옹골차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8시 15분에 아침 기도를 하기 때문에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서 씻고 준비를 한 다음에 '화해의 교회'로 기도를 하러 간다.
첫날에는 아직 시간에 적응이 안되어서 늦장 부리느라 약간 늦었다.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는데 자원봉사자 친구도 지각하는 바람에 같이 잘 들어갈 수 있었다. 겨울에는 방문객의 수가 적기 때문에 뒤편의 교회 입구들을 개방하지 않는다.
기도 시간은 성경 봉독과 떼제 노래를 통한 기도, 그리고 침묵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노래 시간도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침묵 시간이 기다려졌다. 마음을 진정으로 비울 수 있는 시간이였다. 가끔 들리는 사람들의 기침 소리가 거슬리긴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백색 소음의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침묵 시간은 어려운 시간이 아니다. 개인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한 시간이다.
떼제의 기도 시간이 마음에 들었던 다른 하나의 이유는 다들 각기 편한 자세로, 편한 장소에 앉아서 기도를 했기 때문이다. 떼제의 공동체는 엄격한 규율이 아니라 최소한의 규율과 많은 선택권과 자유로 운영되는 공동체이다. 어김없이 가장 엄숙한 시간인 기도 시간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다. 양반다리로 앉았다가 그냥 다리를 쭉펴고 편하게 앉아있어도 어느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고 눈총 주지 않는다. 그냥 자기에게 좋은 자세로 있으면 되는 거다. 단, 눕는 것은 예외!
기도 시간 후 오전 시간에는 수사님과의 성경 공부 시간이 있다. 처음 3일간은 참여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개인 시간으로 이 시간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성경과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은 좀 떨어져 있고 싶다. 화해의 교회는 이 시간에도 계속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조용히 앉아서 떼제 기념품 가게에서 산 책을 읽었다. (떼제의 수사님들은 오로지 이 기념품 가게에서 얻은 수익으로만 생활을 꾸려나가신다. 직접 만드신 예쁜 도자기 공예품들도 정말 프랑스 물가와 비교해서 매우 싼 가격에 판매하지만 가난한 대학생은 그저 보기만 하지요. 대신 이쁜 엽서를 많이 샀다.)
프린스턴 신학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저자가 떼제 공동체에 관해 이것저것 자세히 서술한 책인데 떼제에서 이 책을 읽으니 더욱 와닿았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저자가 내가 머무른 시간에 떼제에 와있었다! 한국인 언니가 수요일에 떠나서 배웅해 주러 정류장에 같이 있었는데 어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람이랑 미국인 그룹을 이끌고 온 교수님이 대화를 하면서 오길래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클뤼니에 밀린 빨래를 한다고 간다고 했다. 알고보니 그 분이 저자였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녁 시간에 조용히 책의 앞장에 사인을 받았다.
성경 공부 시간 후에는 점심 기도가 있고, 점심 식사 후에는 2시부터 떼제 노래 연습이 있다. 독일에서 온 테레사가 지휘를 하고 지도를 해줬는데 첫 날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가 그 다음부터는 오는 사람들만 계속 와서 얼굴을 익힐 수 있었다. 나중에는 한국인이랑 독일 사람들 밖에 없었다. 독일 아이들 그룹은 이제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인 아이들이였는데 아무리 서양인들이 늙어보인다 하더라도 정말 얼굴과 행동에서 고등학생의 티가 났다. 덩치는 산만한데 그러니까 귀여웠다.
3시 부터는 노동 시간이다. 봉사자들이 노동 그룹을 배정해주고, 그룹끼리 하루하루 해야 할 청소를 1시간 반 정도 한 다음 티타임을 가진다. 나는 도미토리의 침대 시트를 가는 작업을 맨 먼저 했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온 레미랑 같이 파트너가 되어서 했는데 레미는 영어는 잘 못해도 참 재밌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특이하게 레게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자기의 정신을 대표하는 심벌이라고 했다. 나중에 기도시간에 보니까 인도 요가 호흡법 비스무리 한 걸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 보였다. 침대 시트 가는 걸 이틀 동안 하고, 다음에는 화장실 바닥의 석회 제거와 벽에 곰팡이 제거 작업을 했다. 이걸 하니 오후 시간 이후에는 녹초가 되고 저녁에 아주 일찍 잠들 수 있었다. 이거 외에도 교회 바닥 청소기로 밀고, 화장실 청소도 해봤다. 참 이것저것 청소 많이 했다. 곰팡이 제거가 워낙 많은 움직임을 필요로 했기에 나머지 일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이 노동일을 자원봉사자 친구들이 이끌어서 청년들끼리 자체적으로 해내고 수사님들은 일절 신경을 안 쓰신다. 완전히 우리를 믿고 맡기시는 셈이다.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 노동을 하면서 다른 나라 친구들과 더 재밌게 대화도 하고 가까워 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였다. 여기서 친해진 네덜란드 친구들한테 한국어 문장 몇 개를 알려줬더니 귀엽다면서 너무 좋아했다. '가자!'랑 '배고파!' '배불러!' 나중에 나를 볼 때마다 '배고파!'를 남발했다.
노동 후에는 7시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식사를 가진 다음에, 저녁 기도를 8시 30분부터 10시 남짓하게 하고 나면 하루 일과가 끝이다. 식사 때마다 자원봉사자 친구들이 설거지와 식탁, 바닥 청소를 해 줄 사람들을 구한다. 나도 설거지를 몇 번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동갑내기 친구 루시랑 저녁기도가 끝나고 항상 샤워타임을 가졌다. 이때가 참 샤워하기 최적의 시간이다. 저녁기도 이후에는 너무 귀찮고 아침에는 더 자야하고 사람이 저녁때보다 많아서 싫다. 샤워 후에 향긋한 복숭아 바디로션 냄새를 맡으면서 기도를 하고 잠에 들면 그보다 더 완벽한 스케쥴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저녁기도는 항상 10시 쯤이 되면 사람들이 거의 다 교회를 떠나간다. 일주일 내내 마지막까지 남아서 떼제의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갔다. 그래야지만 성이 풀리고 마음이 편했다. 이 좋은 노래를 떼제에 있으면서 부르지 않는다는 건 작곡자와 수사님들의 노고에 대한 큰 실례이다.
기도를 마치면 또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기숙사 침대에 눕는다. 매일매일이 참 안락하고 따뜻한 밤이였다.
월요일 밤에는 '언제 집에 가려나?'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항상 그렇듯이 시간은 고속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평화로운 떼제의 나날에 도취되어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떠날 날이 다가왔다. 프랑스의 기적을 한 번 더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버스 시간표를 제대로 안 챙겨본 결과 일요일 첫 버스 시간을 착각해서 기차표를 11시껄로 사는 엄한 실수를 범했다. 택시 가격을 문의해보니 100유로란다. 음, 좀 아니였다.
기차표를 다시 끊으면 68유로 정도라서 그냥 이 표를 날릴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다. 여기저기 물어보면서 그야말로 떼제를 들쑤시고 다녔는데 (쪼금 과장해서 아마 그 주에 온 사람들 중에 내가 일요일 아침에 떠나는거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정도로), 나의 감 좋은 레이더망에 딱 포착된 미국인 그룹 리더 교수님! 넌지시 물어보니 11시 기차를 타고 떠나기 때문에 단체 버스를 그냥 렌트했다고 한다.
아 이런 행운이! 그래서 혹시 얻어 탈 수 있으련지요 조심스레 물어보니 당연히 와도 된다고 환영해 주셨다. 푸근한 교수님의 배를 껴안으며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월요일부터 시작된 나의 작지만 막대한 지출 문제가 달린 고민은 수요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무리가 되었다.
떼제를 떠나면서 친해진 친구들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너무 막 교환하면 괜히 쓸데없이 친구수만 늘릴까봐 정말 친하게 지냈던 몇명에게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대신 사진은 진짜 막 찍었다. 그 중에 루시는 파리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요일에 돌아가서 당일에 또 만났다. 같이 샌드위치를 사 먹었는데 내가 파리 왔다고 샌드위치까지 사줬다. 아 정말 프랑스에서 먹을 복이 너무나도 터졌었다. 나도 신세만 질 수는 없기에 루시가 2월에 스웨덴 여행을 온다고 해서 그 때 케밥피자의 맛을 보여주겠다고 진지하게 약속했다. 음 물론 내가 먹고 싶기도 하고. 케밥 피자는 언제나 옳다.
떼제에서의 일주일은 하루하루가 보석같이 빛나는 날들이였다. 물론 이 생각은 여기에서 자원봉사자를 하면서 장기 체류를 하면 달라질지도 모르는 생각이긴 하지만. 어느 공동체든 가십거리는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튼, 오로지 노래만 바라보고 온 공동체였지만 얻은 것이 상당히 많다. 여기 온 외국인 친구들은 다들 마음이 열려 있는 편이라서 하루 종일 즐겁게 대화를 했다. 중학생 때 왔었더라면 놓쳤을 것이다. 참 인생은 잘 짜여진 직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 에티엔느의 샘>
떼제 기숙사 너머로 가면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있다.
겨울이라 사람이 없고 조용해서 좋았다. 여름에는 참 싱그러울 것 같다.
<작은 예배당>
떼제 공동체 밖으로 한 3분만 걸어가면 작은 교회가 있다.
이 교회 밖에 로제 수사님을 포함한 이 곳 수사님들의 무덤이 있다.
<떼제의 종>
종소리도 가만히 들어보면 선율이 있다.
화해의 교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스테인드 글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