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다큐멘터리 '디터 람스' - 압축된 간결성에 대하여
    Diary/2023 2023. 1. 2. 14:57

    https://www.netflix.com/watch/81050038

     

    디터 람스 | 넷플릭스

    거물급 제품 디자이너 디터 람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의 작업이 미친 지대한 영향과 미래에 대한 그의 비전을 탐구한다.

    www.netflix.com

    회사가 새해 휴가로 문을 닫아서 이번 주에는 그동안 못 봤던 작품들을 많이 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는 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여름 즈음에 디자이너 친구들과 나카메구로의 한 갤러리에 디터 람스 제품 전시회를 보러 다녀왔다. 사이즈가 아담한 갤러리에 그가 디자인한 브라운사의 제품이 네 점 정도 전시 돼있었다. 갤러리 직원과 제품 구입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우리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한쪽 벽면에 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 중이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아마 이 다큐멘터리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한쪽에는 오디오 제품이 있었는데, 영국의 엠비언트 음악가 브라이언 이노의 LP "Music for airports" 시리즈를 재생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이런저런 엠비언트 음악을 찾아들었는데, 많은 음악가들 중에서 브라이언 이노의 이 앨범이 숙면에 많은 도움이 돼서 즐겨 들었었다. 다큐멘터리 음악도 이노가 담당했다. 차분하고 절제된 음악과 꼭 필요한 형태와 기능만 존재하는 디터 람스의 디자인은 서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인 것 같다.

    좋은 디자인이란 훌륭한 기술이 따라줘야 가능하다는 그의 말은, UI/UX 디자이너와 밀접하게 일하는 나에게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디자인,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기술은 팥 없는 찐빵 (아니면 붕어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한창 유행했었는데,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협업 관계에 있는 타직군 사람의 언어도 이런 자세로 배워야 하는 듯하다.

    디터 람스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있는 것을 개선하는 작업을 선호하며, 이를 '리엔지니어링'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유물을 고치기보다 새로 사는 것을 더 선호하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대화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기 바쁜 현시대의 사람들을 걱정한다. 그는 몇십 년 동안 그의 아내와 한 주택에서 살고 있다. 일본 여행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일본식 정원은 아닌 그의 정원에는 정성스럽게 가꾸는 분재와, 세월에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녹이 낀 통통한 미륵불상이 있다. 일본은 압축된 간결성이 대단한 나라라고 칭찬한다. 왠지는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하이쿠가 떠올랐다. 올 한 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엔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말을 아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의 디자인도, 수학도, 엔지니어링도, 코딩도 결국엔 추구하는 것이 그런 정제된 간결함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그를 보면서 우리 회사에서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개인의 삶도 잘 챙기면서 직설적으로 말하고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독일분들도 몇몇 떠올라서 슬며시 웃음이 지어졌다. 디자인, PM, 엔지니어 부서별로 높은 책임자 위치에는 독일 사람이 적어도 한 명씩 꼭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