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높임을 한다는 것은 낮춤도 있다는 것.
    Diary/2013: Sweden Lund 2014. 2. 14. 02:14

      누가 보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심정을 이 블로그에 솔직하게 써보자면, 고작 교환학생 한 학기 나온 것 뿐인데도 벌써 한국가기가 답답해진다.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익숙한 거리들과 음식들을 다시 접하고 학교 생활 마무리 할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을 이리 찝찝하게 괴롭히는게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니 그 문제는 다름아닌 '언어'에 있었다. 한국어는 다 좋은데 너무 존댓말 / 반말 사용의 구분이 명확하다. 높임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한국어만 평생 쓰다 죽을 때도 할 수 있을 법한 생각인데, 영어를 쓰기 시작하니 상상이상으로 더 답답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여기와서 제일 편했던 점은 나이 안 물어봐도 된다는 점. '이름'만 알면 된다. 나이가 몇 살이든 모두와 친구 할 수 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자기가 같은 대학에 다니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다는 데에 신경을 쓰는 거 같아 보이긴 했지만 결코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한국에 있을 때는 별로 존댓말과 반말의 사용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나보다 1살이라도 많으면 존댓말을 쓰고, 1살이라도 적거나 동갑, 혹은 가까운 친척 간에는 그냥 반말로 대했다.

      '높임'이 있으면 당연히 그 반대로 '낮춤'도 존재한다는 소리이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낮춘다'라는 건 참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 아닌가.. 나이가 적다고 그 사람을 '낮출' 수 있는 것인가? 고작 좀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가 낮춰서 대하는 사람들을 정말로 낮출 권리가 있는 것인가? 나이가 어려도, 나보다 어른다운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한참 어린 아이에게서도 우리는 본받아야 할 점들이 있다. ('아빠 어디가'를 볼 때마다 느낀다.)


      처음에 여기 와서 재미교포 친구를 사귈 때, 나는 그냥 익숙한 대로 존댓말로 대했다. 말을 쓰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 친구는 (나보다 2살 많다) 듣는 자기가 너무 불편하다고 반말 하자고 했다. 참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대학에서 만난, 나보다 학년이 높은 '언니'한테 반말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학년 높은 언니들에게는 아무리 친해도 자동적으로 존댓말을 쓰는게 당연한 거였었다. 그리고 언니들도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나로서는 이 친구의 제안 하나로  인해 그 날은 하나의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막상 반말을 하고 이름으로 부르자니 처음에는 너무나 어색했는데, 하루도 안 지나서 익숙해졌다. 그렇지, 모든지 시작이 어려운 셈이지. 나중에는 그 친구가 '봐봐, 이제 반말 잘하네! 편하지? 진작에 그러라 했잖아!'하면서 놀라할 정도였다.

      '존댓말'을 예의를 차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치면 존댓말 개념이 한국어 처럼 엄격하게 존재하지 않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무례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반말을 한다고 사람이 무례해진다면 그건 그 사람 인성에 문제가 있는 거고. 그 친구에게 '언니'의 호칭을 버리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걸 시작한 건 나에게 엄청난 경험이였다. 한 학기 동안 이 고마운 친구와 참 잘 놀았다.


      귀국까지 얼마 안 남은 지금은 같은 기숙사 복도에 사는 친구들이랑 한참 친하게 지내고 있다. 다들 학사는 벌써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밟는 '언니', '오빠'들이고 나랑 동갑인 친구는 한 명 밖에 없다. 한국어를 썼으면 지금 이 상황은 조금 더 다르게 진행됐을 것 같다. 존댓말을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더 행동을 조심하려 하고, 뭔가 더 얌전해지려 하고 나를 꽁꽁 포장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대외용 나'가 이제는 불편하다. 큰일났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