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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번째 리더 체험기
    Diary/2022 2022. 2. 13. 20:20

    생각해보니, 처음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팀 소속도 자주 바뀌고 리더도 자주 바뀌었다. 첫 번째 직장에서 두 번, 두 번째 직장에서 다섯 번, 세 번째 직장에서 두 번 정도, 총 아홉 명의 리더를 맛봤다(?) 맛보기 체험이라 해도 무방한 게 일한 지 이제 겨우 막 7년이 된 참이니, 평균 8달 정도 나의 리더였다가 사라진 셈이다. 그중에는 리더가 먼저 떠난 적도 있고, 내가 감정 통제가 미숙해서 더 이상 마음이 너덜 해지기 전에 먼저 떠난 적도 있다. 절대 이 모두가 먼저 떠난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아홉 번째 리더는 회사와의 입장 차이를 이유로 퇴사했는데, 여러 감정이 섞여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원하는 직급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 벌린 프로젝트를 사람 모아 놓고 나가면 너무 책임감 없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가 원래 회사 생활 공식 법칙인데 너무 꼰대스러운 생각을 했나 싶기도 하고. 살짝 이러한 상황이 지겹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사람들이 리더직을 대부분 차지하는 회사라면, 잘 나가는 경우에는 상관없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가장 먼저 빠져나가 회사가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까?

    리더를 보며 직급이라는 것은 프로젝트 시작하고 사람 모았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할 능력이 있음을 확실히 보여야 얻을 자격이 주어진다(그렇다고 보장된 것은 아님)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도 똑같이 명문 학교 학벌이 회사 업무 지능을 100%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경험했다. 유려한 언어 구사 능력은 굉장한 장점이 되지만, '유려한 언어를 구사하는 나'에 도취되고 그 언어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말을 못 하는 편이 낫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면 주변에서 동정이라도 해주지. 특히 주변 사람보다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한다. 내면에 그런 우월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행동으로 바로 티가 나는 것 같다. 말은 상대가 정말 답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무안을 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점은, 1) 이 회사는 그런 사람이 소수라는 점(아니면 내가 아직 모르는 걸 수도 있고. 하지만 워낙 다양한 리더 유형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 대충 어떤 리더가 불나면 가장 먼저 도망갈 사람인지 알겠다. 말과 외모가 번지르르하면 주의할 것. 특히 외모보다는 말, 말, 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이 정말 사실이다. 잔치에 먹을 것이 많다면 프라이빗 파티이지 않을까? ㅎㅎ), 2) 프로젝트 자체는 원래부터 원하던 것이었고, 3) 이번 리더와는 살짝 거리를 두고 회사 생활을 하던 참이라 지금까지 겪었던 상실의 아픔(?) 중에 가장 타격이 적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홉 명의 리더를 내 인생에서 스쳐 보내가면서 사람 보고 회사 다니는 게 아니라는 말을 온몸으로 겪는 중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혹시라도 리더가 된다면, 부끄러운 줄 알고 이런 식으로 퇴장하지는 않을 거라는, 혹은 팀원에게 그런 공수표만은 절대 날리지 않을 거라는, 혹은 쓸데없이 감정을 많이 교류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받아 줄 것이라 다짐을 한다. 회사는 그 사람이 나가도 망하지 않는 게 회사지만, 남는 사람들의 마음은 메꿔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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