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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나자와 여행기 - 1일차
    Diary 2024. 9. 1. 19:53

    저번주 금요일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2박 3일 가나자와 여행을 다녀왔다.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고마쓰 공항에서 내려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가나자와 역까지 이동했다. 여름휴가를 아직 제대로 취한 적이 없어서, 잠깐 숨 쉴 틈을 마련하고 싶어 결심한 짧은 주말여행이었다. 어디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보다 일본에 사는 동안 일본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도시 목록을 살펴보다가, 방송대에서 들었던 일본학 수업 중에 가나자와 관광에 대해 교수님이 정말 열정적으로 홍보한 부분이 생각나서 가나자와로 결정했다.

    사실 딱히 카나자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없었고 미리 계획도 숙소 예약과 21세기 미술관 표 구입 말고는 하나도 안 했다. 고마쓰 공항에서 내려서 가이드북을 산 다음에 버스 안에서, 그리고 점심으로 가나자와 역에 있는 스테이크 덮밥 집 앞에서 한 시간 남짓 대기를 하며 책을 훑어보면서 대충 어디를 갈지 정했다. 스테이크 덮밥집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어서 가봤는데, 고기 양이 만족스러웠다. 소금 사이다를 같이 주문했는데, 양이 많아서 조금 남겼다. 사이다에 짠맛이 섞여있어 나중에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가나자와 역에서 오와리초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내리니 근처에 과거 은행으로 사용했던 초민 문화 박물관(町民文化館)이 열려 있어 무료 입장이라 들어가 봤다. 은행의 과거 외관과 내관이 잘 보존돼 있었다. 지하의 금고는 박물관으로 전환해서 일본 화폐 종류를 연대별로 전시했다. 가나자와가 금박으로 유명한 곳이라서 박물관 앞에는 금박으로 덮인 あきない君이라는 이름의 상이 서 있었다. 지금 와서 궁금해서 캐릭터 이름으로 구글링 해봤는데, 오와리초의 상점가 조합 이사장을 모델로 한 캐릭터라고 한다. 옆구리에 주판을 다소곳이 끼고 있었다.

    https://www.chunichi.co.jp/article/584952

     

    【きょうのイチオシ】目指せ 黄金の「あきない君」 尾張町商店街に銅像設置:北陸中日新聞W

    貼り付ける金箔 近くで販売 金沢市尾張町の尾張町町民文化館の前に、尾張町商店街振興組合のキャラクター「あきない君」の銅像が設置され、十...

    www.chunichi.co.jp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일단 짐을 풀러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2성급 호텔 LINNAS Kanazawa었다. 예약한 방은 굉장히 좁았지만 신기하게 어매니티는 다 잘 갖춰진 곳이었다. 침대는 2층 침대 높이로 되어 있었고, 그 밑에 탁상과 티브이가 놓여있었다. 창가에는 책상이 놓여있었고 집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앤틱 한 이케아 램프가 있었다. 친환경 호텔을 목표로 하는 곳이라 룸 클리닝 서비스와 수건 교환도 연박을 어느 정도 해야 제공한다. 실내복을 500엔 별도로 내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일본 호텔에서 묵는 재미 중 하나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편한 실내복을 입는 것이다. 잠옷을 챙겨야 하는 부담도 없고, 사이즈도 항상 신기하게 몸에 너무 끼지도 않게 살짝 여유로운 핏이라 매우 좋아한다.

    호텔에서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일단 잠을 깨려고 커피를 마시러 나섰다. 카페를 구글맵에 검색해보니 호텔 근처 카페는 거의 문을 닫았거나 곧 닫을 예정이었고, 가나자와 성 근처의 다른 호텔 산라쿠의 카페가 그나마 시간이 맞아서 무작정 거기까지 걸어갔다.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니 왠지 올드한 분위기가 우중충한 날씨랑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호텔 입구로 들어서니 벚꽃과 그 아래 남녀 커플이 그려진 화려한 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로비로 들어서니 안내원이 다가왔다. 카페 찾아왔다고 했더니 바로 안내해 줬다. 카페 내부 창도 밖에서 본 것과 같은 작가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으로 장식돼 있었다. 아이스커피랑 오렌지 케이크 세트를 주문하니 가나자와의 명물 금박 가루가 커피에 뿌려진 채 서빙된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기념품 가게가 있고 여러 금박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장사 기법에 감탄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금박 기념품을 샀다.

    커피로 원기를 충전하고 오후 8시까지 문을 여는 공예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겐로쿠엔을 가로질러서 가볼까 했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가는길에 신기했던 점은 외국 사람들, 특히 서양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보통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관광지에 제일 많이 보였는데 덴마크에서 올 법한 백인들이 제일 많았다. 아무튼 사람 구경과 풍경 구경을 하면서 공예 박물관까지 걸어갔다. '공예의 빛과 그림자'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원래는 아이들용인 스탬프 릴레이도 해보시겠냐고 은근슬쩍 감상 키트를 같이 주셔서 덥석 받아서 신나게 도장도 찍으면서 작품 감상을 했다. 일본 사람들도 도장 깨기 참 좋아해~ 큰 도장을 꽝 하고 찍었을 때 모양이 깔끔하게 나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감상한 공예 작품 중에 마쓰다 곤로쿠의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나자와 출신의 유명한 옻칠 공예가라고 한다. 작업 과정을 찍은 몇십 분 남짓한 영상을 전시장에서 틀어주고 있는데 작업 과정이 엄청나게 섬세했다.

    https://www.momat.go.jp/craft-museum/ko/architecture/shigotoba

     

    마쓰다 곤로쿠 작업실 - 국립공예관

    가나자와 출신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소위 인간 국보)인 옻칠공예가 마쓰다 곤로쿠(松田権六)(1896-1986)의 공방을 이축, 복원했습니다. 문화청에서 제작한 공예 기술 기록영화 <마키에-마쓰다

    www.momat.go.jp

    안그래도 요즘에 프로그래밍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피로도가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는데, 이 분의 작업 과정과 결과물을 보니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대리 만족일까나... 요즘에는 정적인 결과물이 남는 직업으로 전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쓰다 곤로쿠의 작품 외에도 뉴욕 노구치 미술관에서 봤던 이사무 노구치의 조명 작품들도 한편에 전시돼 있어 흥미롭게 봤다.

    이런저런 공예 작품을 신나게 살펴보고, 드디어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가게들이 예약 전용이거나 문을 닫은 곳이 많아서 적당한 곳을 찾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탈리안 비스트로가 눈에 띄어 들어가봤는데, 선뜻 테이블 좌석을 주셔서 냉큼 앉아서 바질 파스타와 탄산수를 주문했다. 가나자와는 미식의 도시로 알려졌다고 친구가 카톡을 보냈는데,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음식 맛을 보고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오너는 카운터 석에 앉은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과 계속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요즘에 일본어 듣기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서 무슨 이야기하는지 슬쩍 들어보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는 손님들이 밥 먹고 결제할 때 페이페이 비율과 현금 비율 중 어느 것이 높은 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답은 페이페이...였나? 기억이 잘 안 난다.

    저녁을 다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는데, 정리권을 승차할 때 받아서 내릴 때 정리권과 함께 현금 또는 지역 교통 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처음 현금으로 결제하는 데 정확히 떨어지는 잔돈이 없어서 운전수한테 거스름돈 달라고 했다가,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나도 별로 잔돈을 그렇게 까지 받고 싶지는 않아 괜찮다고 한 뒤에 냉큼 내렸다. 굳이 기다려서 받을 만큼 가치가 없기 때문에 빠른 판단을 내렸다. 오랜만에 정리권 + 현금 조합 버스를 타서 생긴 자그마한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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