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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저런 수다 - 무념무상이 답!
    Diary 2021. 12. 18. 22:35

    오늘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같이 운영진 활동을 하시는 분을 카페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계속 랜선으로만 메시지 주고받다가 1년 만에 얼굴을 뵙게 되어 반가웠다. 주제가 참 다양했는데 일단 서로 근황부터 나누고, 일 하면서 느낀 점, 특히 커뮤니케이션과 팀 문화에 대해, 그리고 개발 서적 번역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같은 팀 사람들과는 문제가 없는데 협업하는 다른 사람들, 특히 나와 잘 안 맞는 다고 생각이 되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부드럽게 하는 데 살짝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1년간 여러 서적(심리학, 불교, 고전 등등)과 요가를 하면서 나를 돌아본 결과, 그 '안 맞는다'라는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함을 알게 됐다. 왜냐면, 그 생각은 순전히 대상에 대한 나만의 주관적인 감상이지, 그 대상을 설명해주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A라는 대상을 놓고 상황에 따라 B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C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학이나 영화 같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창작을 할 때 도움이 되던 풍부한 감정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의사소통에 있어서는 딱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해 미숙하게 행동한 것이다.

    업무에 있어서 확고한 의견을 가져야 하지만, 의견 교환을 하면서 내 의견에 부족한 부분이 있거나 상대의 의견이 더 나아 보이면 바로 받아들여서 수정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은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현재 업무 환경 덕분에 많이 고쳐졌다. HBO 드라마 웨스트 월드에 보면 인조인간들 점검할 때 감정 기능을 끄면 바로 이성만 돌아가는 모드로 전환되는데, 영어권 화자들이랑 이야기하면 살짝 이런 느낌이 든다. 감정이 엄청 배제된 느낌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번만 좀 봐줘~ 그냥 넘어가자고~ 이런 게 별로 없다. (홉스 테데 문화 차원 이론에 나오는 응석 절제 정도가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혹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차이 일수도 있다. -> 이 부분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음)

    출처 - http://noleofantastico.com/blog/2016/12/14/paranoid-android-what-hbos-series-has-to-say-about-class-and-capitalism-in-america

    여성 개발자 롤모델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운영진 친구가 해준 논문 이야기가 살짝 슬펐다. 상위 직급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여자 선배들의 아등바등 남초 사회 적응기에 겁을 먹어 커리어를 이탈하는 여자가 꽤 된다는 이야기였다. 나에게 아직 닥치지는 않았지만 저것이 나의 미래구나 하는 걱정에 미리 겁먹는 것이다. 나도 워낙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서 아직 겪지도 않았는데 피해 본 것 같은 생각이 들고는 했었다. 그렇지만 '현재에 집중하라'는 고전 서적과 불교, 요가의 가르침을 받들어 무념무상으로 지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문화 차원에서 신경 써야 할 문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나의 성별에 따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혜택을 받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여성 선배를 찾아 헤매느니 그냥 남자 선배들의 장점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본받도록 노력하는 편이 빠를 것 같다. 주의할 점은, 이때 '남자를 따라서 남자같이 행동한다'가 아니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재됐다고 한다. 다만 그 비율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남자가 많은 곳에서 일한다고 해서 내 안에 이미 세팅된 비율을 인위적으로 바꿀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남자가 주위에 많다는 환경의 장점을 이용하여 이들을 관찰해보면, 생물학적인 성이 남자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남성성/여성성 비율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몇 안 되는 여자들도 잘 살펴보면 비율이 적어도 살짝 식은 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나의 성향을 파악하고, 나와 잘 맞는 (혹은 잘 맞지 않는) 남자 사람은 과연 어떤 비율의 남성성/여성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 것일 테다. 남자들도 같은 남자 때문에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꼭 성 때문에 사회생활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기분이 들어도 다른 모든 요인들을 일단 차분히 검토해 봐야 한다. 회사에서 저저번 달에 일본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거기서 이런저런 메이저 글로벌 기업 30년 근무 경력 강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성별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생각이 당장 들어도, 아닐 가능성도 상당하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분석해보라고 하셨다. 내 지식이 딸려서 그런 거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배우려고 노력하고, 내 태도가 별로라면 지적을 받아들여 고치도록 노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여자기 때문에 차별받는 거라면 그때는 정말 목소리를 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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