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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 사람들과 대화하면 왜 편한가
    Diary/2021 2021. 10. 31. 23:26

    그동안 곰곰히 생각해 온 주제이다. 왜 외국 사람들과 대화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돈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비율이 적기 때문이다. 살아가는데 돈은 어느정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연구 결과에서 그렇듯, 연봉이 어느 상한선에 다다르면 그 이후부터는 행복이 돈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급격이 낮아진다고 한다. 결국엔 인간관계의 질과 나의 마음의 평안이 삶의 질과 가장 큰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스웨덴에 교환학생 가서 좀 충격받았던 점이, 어떤 재밌는 기회를 놔두고(예를 들면 여행을 같이 가는 계획을 짠다던지) 돈돈 거리는 사람들은 나를 비롯한 주위 한국 사람들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돈 이야기는 넣어두고 돈 이외에 것에 대해 더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고쳤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살려면 나만 그러면 소용이 없고 주위 사람들도 그래야 하는데 여전히 한국은 돈이 주된 주제다. 그래서 회사를 외국계로 이직하고 나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누가 보면 한국 사람들은 1년에 몇억씩 저축하는 줄 알것 같다. 하지만 빈 소리가 요란하듯이 별로 그럴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좀 슬픈 우리 사회의 단면이지 않나 싶다.

    우리는 마치 특정 액수의 돈만 손에 넣으면, 혹은 내가 산 아파트의 가격이 확 오르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인생에 대한 별다른 독자적 사유 없이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는데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기기만적인 방법이기 때문인 것 같다. 손에 넣는 돈이 많아진다는 것은 인생에서 취할 수 있는 옵션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많은 선택의 가짓수를 감당할 준비가 됐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봐야 할 일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존재 결여를 가진 존재이기에 이것을 채우려는 욕망을 갖지만 존재를 대체하고 결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상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망에서 올바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소외된 타자의 욕망에 휘둘리게 된다. 라캉에 따르면 이런 욕망은 주체적 욕망이 아니라 자아의 상상적 욕망에 불과하다. 돈에 대해 종교적으로 초연해지라는 말이 아니라 돈의 남근적 속성, 즉 결여를 통해 욕망을 발생시키는 그 본성을 잘 이해하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돈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돈의 가치를 살리는 방법은 그것을 잘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잘 쓸 때 생긴다. 행복의 원천은 돈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주체의 인격에 달려 있다. 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간적 가치를 부여할 때 돈은 행복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 역사에도 객주와 유통업으로 막대한 부를 이루었지만 홀로 호의호식하지 않고 기근에 시달리던 제주도민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쓴 김만덕(1739~1812) 일화 같은 본받을 예들이 꽤 있다. 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는 베버가 예찬한 근면하고 절제하는 그런 생산적 체제가 아니라 쌓아두기만 하고 방출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고약한 천민자본주의 문화다. 정신분석적으로 볼 때 그런 변비 증상은 인색함과 완고함으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남도 불행하게 만드는 심각한 병이다. 돈을 목적이 아니라 다시 수단으로 돌려놓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다.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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