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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이 복잡했던 또 한가지 이유
    Diary/2022 2022. 2. 16. 21:14

    [지난번 글에 이어서]

    리드 퇴사 전에 1:1로 대화하면서 회사가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좀 들어보고, 그동안 즐거웠다 하고 작별 인사를 하며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이 리더는 자신을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던 것이 퇴사 사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의존하고 싶고 보살핌 받고 싶은 마음이 한 구석에 있을 것이다. 마음만큼 회사에서 자기를 인정해 주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면서 자기를 지지해 줄 멘토가 보이지 않으니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나간 걸 수도 있겠다. 이런저런 억울함이 많아 보였다. 들어와서 얼마 안돼 회사에 여성 개발자가 적다는 이야기를 어느 회의에서 사람들 앞에 대놓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근데 그거는 마치 살이 잔뜩 찐 사람한테 "야, 너 살 너무 많이 쪘다! 우와 이것 봐"하는 것과 똑같은 자폭 행위가 아닌가 싶다. 좀 더 외교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이 '외교적'으로 행동하라는 조언은 예전에 한 미국인 친구가 해준 말이다. 내가 너무 회사에서 말을 막 하는지 고민이 될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그 친구한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딱 저렇게 말해줬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실력이 좋으면 남녀 구분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여자가 엄청 소수인 곳에서 일하는 존재고, 그러다 보니 내 마음대로 행동하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행동하라는 이야기다. 누구나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집단 내에서 다수의 사람이 그러고 있는데, 만약 소수의 사람이 그런 지적을 대놓고 한다면, 게다가 다수의 사람이 적극적으로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이대면 반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들이받는데, 상대편 다수가 신경도 안 쓴다면 그것은 無駄(むだ, 쓸데없는 헛짓거리. 회사에서 배운 재밌는 일본어 중 하나)다.

    주변을 보니 남자분들은 선후배 간에 잘 챙기는 것 같은데 그런 점이 가끔은 부럽다. 그렇지만 그거는 또 내가 그런 사람들만 봐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남자분들 중에는 이렇게 잘 뭉치는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확실한 것은 결국 챙겨 주는 것은 뭐라도 나랑 비슷하거나 잘 맞는 사람을 택한다는 것, 그리고 마음 맞는 동성 개발자가 있으면 직장 생활 하기 몹시 편하다는 것. 그래서 이전 직장과 이번 직장 여자 개발자 분들이랑 예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팀 동료한테는 하루에 메시지라도 하나 보내서 오늘 한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라도 이야기 나눈다. 필리핀 동료가 업무에 필요한 의사소통을 아주 잘해서 옆에서 보고 많이 배웠다. 예전에는 알아서 캐치업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그것은 한국 분들이 눈치가 특히나 발달됐기 때문에 알아서 잘했던 것이고, 팀으로 일할 거면 대화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배울 점이 있고 따르고 싶다면, 굳이 여자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어느 한쪽 성별만 신경 써서 직장 인맥을 넓히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욱 이 리더도 너무 성별로 사람을 구분하지 말고 인간성 자체로만 승부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국적/문화/인종/연령대/학벌 등 너무 많은 것이 차이나는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으니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전혀 몰라서 그냥 놔뒀다. 😅  그런데 세상일은 모르는 거라 이런 사람이 또 일본 문화의 진보를 이끌 수도 있다... 이런 내용으로 만화를 만들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変な外人が日本に行って、日本の変化が始まった。」 음 근데 너무 나간 설정인 듯! 아무튼 이분과 비교하면 한국 남자 개발자분이랑 대화하는 것은 난이도 '하'에 해당한다. 글로벌 회사는 나의 마인드도 세계화시켜버렸다. 만약 내가 40살이 될 때까지 약 1년 전의 사고방식을 고수했다면 내 미래 모습이 바로 이 사람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묘한 사람이었다. 세상을 넓고 여유롭게 바라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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