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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며: 진로?
    Diary/2013: Sweden Lund 2013. 12. 21. 09:51

      진로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많이 복잡하다. 욕심은 많아서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다 할 수는 없고.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내내 꿈이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맨처음 가진 꿈은 건축가였다. 아빠랑 같이 간 가우디 전시회 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의 날씨는 우중충하게 비가 약간 내리는 날이였고 전시회를 보고 아빠랑 짜장면을 먹은 것 까지. 아빠는 그날 나한테 가우디 전시회 도록을 하나 사주었다. 아직도 책꽂이에 고이 모셔져 있는 그 책을 몇번이고 읽었는데 (그보다는 그림 중심으로 훑었다고 하는게 낫다) 괜히 가우디가 좋아져서 나도 건축가가 되겠다고 했다. 머릿속으로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고 건축 사진에서 안보이는 부분을 상상하는게 그 때 내 취미였다. 그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내 꿈은 건축가였고 가끔은 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꿈이 한비야씨처럼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걸로 바뀌기도 했다. 책의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중학교 때는 공부하고 친구들이랑 노느라 바빠서 별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이때는 너무나 내신성적에 집착했었다. 점수가 90점대 이하로 떨어지면 그날의 기분은 하루종일 최악이였다. 울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해가 안되지만. 내가 울고 기분상해 할 때마다 내 옆에서 나를 열심히 위로해준, 지금도 제일 친한 나의 친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참 찡찡댈 때마다 위로해 주기도 힘들었을텐데. 아무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합쳐서 총 12번의 시험을 치러내느라 정신이 없는 시기였었다. 

      중학교 3학년 끝나갈 때 쯤에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일반고계에 진학하기보다 뭔가 더 전문적인 걸 배우고 싶었다. 가진 못했지만. 국제고등학교에 지원한 것도 기억이 난다. 잘난건 내신성적 밖에 없어서 떨어졌다. 그렇게 인문계고에 그냥 저냥 진학했다. 친한 중학교 친구들이 나 빼고 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어서 고등학교 배정 발표가 된 날도 열심히 울었고 친구들은 나를 위로해주며 다같이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고등학교 때도 참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다시는, '다시는'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새벽 늦게 자고. 챗바퀴 돌듯이 수학능력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했고 公교육은 나에게 空교육으로 느껴질 뿐이였다. 평가원 비위에 살살맞추어 가면서 주어진 제한 시간 내에, 주어진 사지선다 문제들을 보고 답고르기 연습만을 3년을 했다. 지금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시험방식이다.

      나에게 더 좋은 선생과 교재는 학교 교과 과정 외에 느끼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열심히 했던 성당 성가대 활동, 거기서 만난 많은 좋은 사람들, 틈만 나면 읽었던 씨네 21과 다른 잡지들, 신문들, 책들. 이 때는 글들의 호흡이 매우 짧은 잡지를 일반 책보다 더 많이 읽었다. 무슨 말인지 가끔 모르겠는 기사들도 (특히 진중권씨 미학 관련 글들) 있었지만 읽을 수록 내 뇌를 자극하였고 나는 그것을 즐겼다. 신문도 처음 읽을 때는 집중도 안되고 어려운 말들도 많아서 흥미로운 기사 위주로 읽었다. 생각해보면 이 때의 유일한 낙은 글읽기와 성당활동, 그리고 음악이였다. 이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스트레스 해소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글읽기를 좋아한 덕분에 다행히 수능공부에서도 언어와 영어영역 공부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없었다. 그냥 읽기 자체를 즐겼으니. EBS 교재 몇권과 평가원 기출문제집으로 고등학교 내내 1, 2등급을 받았다. 이와는 정 반대로 수리영역에서는 항상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수1, 수2, 미적분까지 공부해야 할 양이 참으로 많았고 무슨 오기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학원도 다니지 않고 스스로 하겠다고 그렇게 미련하게 공부를 고등학교 내내 했다. 수학은 혼자 공부할 때는 참으로 재밌었으나 아쉽게도 모의고사와 수능때는 별 재미 없었다. 시간은 항상 모자랐다. 3년 동안 정말로 잘 버텼다 그래도.

      

      내가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한 중대한 이유를 지금 굳이 까발리자면, 음악을 들으며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에서 이어폰과 헤드폰을 뺀 날이 거의 없었다. 음악은 지루하기 짝이없었던 고등학교 때의 나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성가대에서 피아노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습하고, (나에게) 새로운 노래와 장르, 명반들을 찾아서 끊임없이 헤매였다.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수능을 마치고 진학할 대학과 과를 정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모 전문대 음향 관련학과에 진학해서 음향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정말 그 외에 길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렇게 내 꿈은 건축가에서 시작해서 여러 직업을 거쳐서 음향엔지니어까지 다다랐다. 그때 그 학교 홈페이지에 드나들면서 내 수능 성적 정도면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전문대라 하니까 담임 선생님도 말리고 부모님도 말렸다. 인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하라고. 나는 참 말을 잘 들었다. 그래서 음향엔지니어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교과 과정을 가지고 있는 과를 가진 인서울 4년제 대학을 찾으려고 모든 홈페이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지금 다니는 과에 진학했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하고, 복수전공을 신청해서 내가 좋아하는 문과 공부도 같이 하고, 지금 여기 스웨덴 룬드에서 교환학생도 한 학기 마쳤다. 한국을 벗어나니 그 동안 내가 있던 세상이 얼마나 좁았나 돌아보게 된다. 내 생애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들이 생기고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들의 진로계획은 다양했고, 나는 아직 뿌옇게 안개 낀 터널을 헤매고 있다.

      더 많은 고민과 얘기를 통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있어서 무엇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내 나름의 가치관 정립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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