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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중간한 회색 분자의 삶
    Diary/2023 2023. 8. 5. 09:31

    작년까지는 일본어가 잘 되지 않아서 영어권 사람들이랑 많이 어울려 다녔는데, 이런 생활 방식은 너무나 인공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스웨덴 교환학생 때 느꼈던 것과 딱 비슷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상황은 스웨덴 보다 좋지 않은 게, 적어도 북유럽 사람들은 영어로 전환이 자유로워서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일본은 그런 거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스웨덴 사람들도 자국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영어를 계속 사용하니, 올해는 그냥 현상 유지 정도로만 하기로 하고 일본어 공부 비중을 엄청 늘렸다. 그렇지만 그렇게 결심을 하고 보니 단점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 일본어 공부하는 것만큼 좋은 가성비의 학원이나 선생님을 찾기가 무지 어렵다는 것! 그래서 고민 끝에 다시 한국 학원을 찾았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이 제일 외국어 공부하기 좋은 나라다. 그리고 영어와 일본어는 상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를 짝지어서 학습하는 편이 효율이 좋다. 일본은 뭔가 영어 원어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가 자국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비해 가격이 배로 비싼 느낌인데, 언어 수업도 그중 하나이다. 그래서 영어만 쓰는 그룹에 속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바가지 씌워질 확률이 높다. 이 그룹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일본어를 좀 더 해야 여기 생활이 더 윤택 해지지 않을까?

    요즘에 일본어 학습에 들이고 있는 노력은 다음과 같다.

    • 학습 의욕을 높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서점에 가고 재밌는 드라마 목록을 수집한다. 서점에 가면 재밌는 잡지가 즐비한데, 내용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얼마 전에는 전자책으로 만화책을 한 권 봤는데, 예전에는 몇 페이지 읽으면 힘들어서 포기했는데 이제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꾹 참고 한 권을 다 마칠 수 있었다.
    • 일주일에 한 번있는 회사 일본어 수업은 절대 빼먹지 않는다. 시간도 일부러 주말 모드로 접어드는 금요일 오후에 잡았다. 수업이 없는 날에 혼자 익혀 둔 표현을 선생님한테 쓰면서 피드백받는 재미가 있다. 회사에서 올해부터는 JLPT 관련 수업은 하지 않겠다고 해서, 이런저런 재밌는 NHK 기사 거리나 짧은 동화책을 같이 읽는다. 그런데 사실 JLPT도 독해 수업은 이런저런 읽을거리를 같이 보는 거라 큰 차이는 없긴 하다 ^^;;
    • 수업이 없는 평일이나 주말에는 파고다 인강을 보며 독학한다. 6개월짜리 슈퍼패스를 끊었는데, JLPT 모든 레벨 수업이 다 들어 있고, 교재와 음성 파일이 알차게 제공돼 만족스럽다. (게다가 요즘 좋아해서 푹 빠져있는 쿠키 커플 강의까지...! ㅎㅎㅎ)
    • 여가 시간에는 최대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 생활 일본어에 나를 노출시킨다. 저번에는 이만큼 이해하고 표현을 이만큼 밖에 못했는데,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많은 표현을 사용해 내 의견을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참 좋다. 내 나이 또래가 있는 집단부터 없는 집단까지 다양하게 참석해 봤다. 다양한 연령대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번갈아 참석한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 특히 다양한 운동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신체와 동작과 관련된 다양한 일본어를 배울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동작을 하면서 일본어를 듣기 때문에 학습의 효과가 좋다.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모르더라도 아이가 언어를 배우듯이 단어와 동작을 바로 연관시킬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돈을 내는 입장이기 때문에, 대답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외국인 대상으로 강의 경험 많은 선생님들은 유연하게 잘 받아 넘겨주신다. 선생님이나 같은 클래스의 사람들과 친해지면 수다도 떨 수 있다. 운동도 하고, 일본어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고. 아주 장점이 많다!
    • 대화할 때 자신 없어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과하지도 않게 또랑또랑하게 대답한다. 문장은 길게 말하지 않는다. 아는 단어를 최대한 활용하고 단어 학습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껴 본다.

    영어만 한다면 세계 어디 가서 든 살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과 나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빠지기 쉬운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나, 너무 가여워. 흑흑" 모드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소위 expat이라 불리는 영어권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약간 실망을 느낀 것도 있기도 하다. 굳이 안 봐도 될 것을 많이 본 것 같다.

    나는 영어가 완전히 자유롭게 잘 되는 사람도 아니고, 이 나라의 언어가 자유롭게 되는 사람도 아니다. 중간 지대에 어중간하게 속해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왼손잡이도 아니고 오른손잡이도 아닌 어중간한 양손잡이의 생활을 어렸을 때부터 쭉 해온 덕분에 그런 생활에 많이 스트레스받지는 않는다. 내게 있어서 윤택한 삶은 다양한 외국어를 접해 각 문화의 장점을 내 속에 녹여내는 것이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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