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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쌈마이 멘토링 수요 공급의 부조화
    Diary/2023 2023. 6. 10. 18:49

    화요일 아침에 출근하는데 갑자기 전철 안에서 링크드인 메시지가 와서 슬쩍 봤더니 미국 오피스에서 일하는 매니저가 갑자기 자기가 해고를 당했다며, 그동안 같이 일해서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이런 문자도 받아보다니... 어안이 벙벙해서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나 한참 있다가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 매니저가 평소에 우리 쪽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다고 널리 알려져 있어서 특히나 답하기가 까다로웠다. 게다가 나도 분명 회의 중에 안 좋은 인상을 받아서 차갑게 대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나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어서 한번 더 놀랐고, 하루아침에 해고를 해버리는 미국의 노동법도 놀라웠다.

    경력을 보니 이 매니저는 엔지니어를 하다가 처음으로 사람 관리를 하게 됐다. 그런데 다짜고짜 처음부터 돼도 안 되는 허황된 약속을 너무나 많이 하고,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어서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그 와중에 ChatGPT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며 안 그래도 불난 집에 부채질을 더 해버렸다. 도무지 분위기를 읽어서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이 없었다. 만능 ChatGPT를 칭송했던 그는 정작 자신의 해고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 사람이 관리하던 사람 중에 한 명도 비슷하게 특이하다. 약간 더 눈치를 보는 타입이라 첫인상은 더 좋아 보이는데, 왠지 굳이 같이 일 하는 것 이상으로 친해지고 싶지는 않다. 해고당한 매니저가 시켜서 이 사람이 나랑 나의 동료를 위해 멘토링 세션을 마련했는데 약장수 같은 느낌이 나서 한두 번 미팅하고 다음부터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직업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면 같이 기술 공부나 하면 되는데, 별로 읽고 싶은 느낌이 안 드는 자기 계발서를 추천해 주지를 않나, 자기 기술이 딸려서 자꾸 물어보는 것도 티 나서 서서히 멀어졌다.

    둘 다 공통점은 처음 인상은 괜찮았는데 갈수록 밑천이 드러나는 행동이나 말을 한다는 것이다. 대화가 아닌 일방통행의 말 쏟아내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모순되는 주장이 나오는 지점이 있다. 분명히 처음에는 A라고 했는데, 계속 자기 혼자 말하다 보니 B라고도 말하는 식이다. 자기가 한 말을 기억도 하지 못한 채 다음에는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하루하루 자신이 진짜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 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그 사람의 라디오를 들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런 노력을 기울 이는 사람은 대부분 말하고 싶어서 안달 나지는 않은 것 같다. 가만 보면 엔지니어로 일 한지 햇수는 차는데 후배 엔지니어들의 자기를 향한 존경심이 자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우를 범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을 '쌈마이 멘토링 수요 공급의 부조화'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들을 반면교사 삼아 평일에는 그냥 조용히 할 일을 다하고 퇴근에 힘쓰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다른 공통점은 둘 다 ChatGPT를 칭송한다는 점. 정말 직장에서 이에 대해 떠들고 다닌 사람들은 딱 이 사람들 둘 밖에 없어서 신기할 지경이다.

    내가 멘토링 세션을 거절한 탓에 남아 버린 동료는 자기도 발을 빼고 싶어서 그저께 슬랙 메시지를 보냈다. 잘 빠져나오기를... 가만 보면 이 동료는 나보다 사람 말을 더 잘 들어주는 성격이라 혼자 쓸데없는 마음고생 엄청 한다. 우리의 멘토를 자처했던 그분은 내가 뭔가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말을 하자 나보고 disrespectful 하다 했는데, 그래서 나도 앞에서는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그 사람이 부탁해서 한 1:1과 쌈마이 멘토링 세션을 뒤에서 다 취소해 버리는 혼네와 다테마에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미안, 이상한 것 때문에 스트레스받기는 싫어. 우리 그냥 공개 채널에서만 말하고 일만 하자! 왜 존경을 강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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