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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삿포로 여행 1일차
    Diary/2023 2023. 8. 11. 09:21

    2019년에 코로나로 인해 국경이 닫히기 직전에 방문한 삿포로를 이번에 다시 찾게 됐다. 그때는 친구들과 겨울에 눈축제를 보러 간 거라 추운 날씨를 만끽했는데 (나는 겨울에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여름 삿포로에 대한 우호적인 의견을 많이 들은 터라 궁금하기도 하고, 몇 년 사이에 얼마큼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비행기를 예약했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신 치토세 공항에 도착한다. 작년 11월에는 하코다테 1박 2일 벼락치기 여행을 신칸센 타고 다녀왔는데, 기차 안에서 매우 긴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공항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합치면 기차랑 비슷하게 걸린 거 같기도 하다. 아침 5시 15분에 일어나자마자 9시 비행기를 타러 캐리어 끌고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침 먹으면서 한 시간 반 남짓 시간을 보냈다. 신 치토세 공항에서 삿포로 역까지 JR선 열차를 타고 도착하니 12시가 다됐다.

    하나마루 초밥이 역과 연결된 스테라프레이스 쇼핑몰에 있길래, 저번에 친구가 추천한 것도 있어서 대기표를 뽑았다. 그런데 번호가 벌써 130번이고 앞에 83팀이 있다는 것이다. 이걸 기다릴까 말까 했는데 어차피 정해진 일정은 후라노/비에이 관광 빼고 아무것도 없어서 한번 기다려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브랜드가 보일 때까지 돌고 돌았다. 서점에 가서 카페 잡지도 사고, 티셔츠를 두 개 건지고 드디어 초밥집에서 입장하라는 라인 알림이 와서 갔는데, 먹어본 결과 평이하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본에 온 외국 친구들이 추천하는 가게는 뭔가 일본이나 한국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보다 내 취향이 아닌 경우가 많다. 뭔가 기준점이 다르다.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워낙 가게가 많은 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기준점이 높다. 아무튼 이러나저러나 점심은 잘 한 끼 때웠고, 숙소로 가는 일이 먼저였는데, 갑자기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에 가기가 싫어졌다 (-,.-;;;) 삿포로 중심가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러니까 싸지!), 저번에도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대로 해보고 싶기도 하고, 전철 타고 또 가기가 귀찮기도 했고, 카페 잡지에서 좋은 북카페를 봤는데 마침 내가 가고 싶었던 호텔의 로비에 있는 카페여서, 이건 운명이야!라는 생각에 에어비앤비 예약을 초밥 먹으면서 취소하고 당장 호텔의 남은 방을 예약했다. 하코다테에서도 기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어떤 숙소에 머무르고 싶은지 감이 안 잡혔는데, 기차역에서 내리니까 그때 느낌이 팍 왔다.

    많은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본 결과, 숙소 예약 유형은 두 부류로 나뉜다. 가성비를 생각해서 중심가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에어비앤비나 공용 도미토리가 있는 호스텔에 잡는 유형,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관광의 편의를 생각해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중심가와 가깝고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에 잡는 유형. 인원이 많은 여행이라면 에어비앤비가 좋겠지만, 작년에 오키나와를 다녀온 이후로 4명 이상 여행이어도 딱히 같은 숙소를 잡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여행을 다녀오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예측과 통제 가능성을 중요시하는 인간인지 몰랐다. 정말 단체 여행은 함부로 조직하는 게 아니다. 여행사에 리스펙트... 에어비앤비 예약을 하면 단점이 하나 더 있는데, 호스트가 상주하는 숙소는 거의 없고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라 질문이 생길 때마다 에어비앤비 인앱 메시지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묵었던 숙소는 호스트 썸네일 이미지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톡 이미지였다. 호스트라고 소개된 일본인 가족은 가짜였던 것이다. 진짜 호스트는 어디에? 이래서 버추얼은 싫어. 서비스에 대한 실망이 +50 상승.) 클리닝 서비스도 없으니, 이런데 들어가는 비용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절대 싼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이를 잊고 이번에 다시 에어비앤비 예약을 했는데, 초밥을 먹는 동안 이성을 되찾아 얼른 취소하고 호텔로 갈아탔다. 물론 집안일을 여행 간 사람들끼리 같이 하면서 그 경험을 하나하나 소중히 하는 분들이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굳이요? 집안일은 집에 가서 할래요. 여행의 비일상을 괜스레 어설픈 일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저는 그냥 돈 조금 더 내고 일정 수준의 품질이 담보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박 업소에서 묵겠습니다. 여행은 (일상의 노동을 가져와서 거기서도 고대로 하면서) 살아보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내 모습과 취향을 (재)발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작년에 겪었던 불유쾌했던 여행 생각은 이 정도로 하고, 오도리 공원을 통과해서 다누키코지 상점가에 있는 호텔까지 걸어갔다. 출입문이 건물 앞뒤로 있는데, 내가 들어간 쪽은 상점가 반대편이었다. 체크인 후 방에 가서 조금 쉬고 나오니 1층을 통과해 반대쪽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궁금해 가봤는데, 2019년에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혼자 누볐던 다누키코지 상점가가 나와서 너무나 반가웠다. 그때 보고 상점가 중간에 호텔이 들어서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한 도미인 호텔도 아직 있었고, 조금 더 걸어가니 첫날에 묵었던 캡슐 호텔과 커피 마시러 들어갔던 미츠코시 백화점도 그대로 영업 중이었다. 그때 삿포로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신기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후쿠오카와 삿포로의 첫인상과 여행 경험이 너무나 좋아 일생에서 일본에 한 번쯤은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도쿄와 오사카보다 이 두 도시가 주는 느낌이 더 우호적이다. 하긴, 한국에서도 서울에서 벗어나 용인에서 지낼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용인에서 친구들 보러 가끔 서울에 나갈 때가, 서울에서 살 때보다 삶의 질이 훨씬 좋았다.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는 대도시는 번잡스럽고 혼란하다. 그런 데서 오는 자극이 피곤하다. 사람이 감당 가능한 적당한 도시 규모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지금 사는 동네가 조용한 로컬동네라서 망정이지, 중심가에 집을 구했다면 생활의 질이 지금보다 떨어졌을 것 같다.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파르페 카페에 가서 망고 파르페도 하나 사 먹어 봤다. 일본 친구가 알려줬는데 삿포로에서는 밤늦게 파르페를 먹고 집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술 먹고 친구들이랑 배스킨라빈스 많이 갔는데, 약간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이런 사이트도 있다: https://sapporo-parfait.com/en/

     

    Sapporo Shime Parfait

    Conclude a night in Sapporo with authentic parfait like locals. Sapporo Shime Parfait will take you to the best bars and restaurants to experience this amazing culture.

    sapporo-parfait.com

    그래서 도쿄 시부야에 있는 파르페 카페에 같이 갔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 포기하고 다른 곳에 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2019년에 왔을 때도 그런 가게들을 몇 군데 봤던 기억이 났다. 디저트에 딱히 취미가 없기 때문에 이쁘다는 생각만 하고 지나갔다. 내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삿포로 파르페 카페를 일깨 워준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를 여기서 바친다.

    파르페 카페 이후에는 또 신나게 쇼핑몰을 쏘다녔다. 요즘 나에게 생긴 하나의 변화는 꾸미고 옷 입는 것을 즐기게 됐다는 점이다. 이 점은 2019년 버전의 나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예전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옷들이 이뻐 보이고, 반대로 캐주얼한 옷들은 이제 하나 둘 정리해서 버리고 싶다. 엄마한테 말했더니 이제야 여자가 되려고 그런다고, 지금이라도 관심 생겨서 다행이라고 한다 🤣 여기서는 내 옛날 스타일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으니까 어떻게 입어도 상관이 없으니 홀가분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먹는데 쓰는 비용을 요즘에는 새로운 스타일의 옷에 도전하고 몸을 가꾸는데 쓰고 있다. 쇼핑은 친구들이랑 같이 가는 것보다 가게에 가서 점원의 조언을 받고 하는 게 만족도가 훨씬 크다. 구제옷 가게도 잠깐 들어갔는데, 그 가지각색 황홀한 색상의 컬렉션 규모에 놀라 한참을 즐겁게 헤맸다. 도쿄에서도 살 수 있는 브랜드가 대부분이었지만, 여행 와서 하는 쇼핑이 더 좋다.

    쇼핑 후에는 상점가 안에 숨어 있는 비스트로 식당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두 분 다 표정이 너무 온화해서 마음이 편했다. 1인용 메뉴도 준비돼 있어서 부담 없이 주문이 가능했다. 전체 요리로 차가운 수프와 반대로 매우 따끈한 빵 한 조각이 나왔다. 수프는 후루룩 마시라고 했다. 차가운 수프는 일본에 와서 처음 본 것이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식도를 차갑게 식히는 그 느낌을 즐기게 됐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맛이 괜찮았냐고 주인 할아버지가 물으셔서 너무 맛있다고, 매일 오고 싶은 곳이라 했더니 엄청 환하게 웃어주셨다. 오래오래 상점가에서 맛있는 프랑스 요리 만들어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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